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이 다카코 (문단 편집) === [[친북]] 성향 논란 === 비록 '북한에 속았다'라는 발언을 한적도 있던 그녀였지만, 1989년 재일한국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납북 범죄자(...)[*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29명이나 되었다고 한다.]의 석방까지 요구하는 바람에 엄청난 비판을 받아야했다. 이게 한번이 아니라 친분이 있었던 [[김대중]] 대통령에게 한국에 체포되어있는 일본인 납치범 신광수[* [[요코타 메구미]]를 납치한 장본인이다.]를 석방하도록 탄원했고, 이에 김대중 대통령이 '''정말 신광수를 석방하고 북한에 송환하면서''' 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이 한층 꼬여버렸다.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분개해 도이를 성토했고, 이는 사민당이 폭망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.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꾸준히 [[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]]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이 있었으며, 한반도 정책을 놓고 '친북'의 입장을 관철했다는 주장이 있다. [[일본공산당]]마저 도이 다카코 위원장의 친북 성향을 비판했다고 한다. 2002년 [[아베 신조]] 내각관방장관은 도이 다카코의 이런 행보를 두고 '지극히 멍청한 의원'이라고 비난했고, 이 사건이 2000년대 이후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결국 사민당과 도이 다카코가 영원히 재기하지 못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. 다만 상술한 내용은 [[극우]] 성향이 매우 짙은 [[일본어 위키백과]]의 내용을 참조했기에 내용이 편파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. 당장 일본어 위키백과의 해당 문서에 '도이 다카코가 위안부 소녀상 설치 운동 당시 한국에게 돈을 받았다'(...)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내용이 같이 실려있다.[* 현재 기준 (2023년)으로 본 문서에 서술된 내용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이다.] 다만, 도이 당수가 신광수 석방 탄원서를 보낸 것과,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에 신광수가 석방된 것은 사실이긴 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